단문

[검협+쌍존] 어이하여.

류우련 2024. 8. 4. 21:05

https://youtu.be/r5mJbcDGJq8?si=Usg-46C1SLOR2Jpj

 

 

- 낯선 얼굴이구나, 내가 그리 화산에 안 들렸나?

- 세 달 전에 들려놓곤 무슨 소리쇼? 

 

 본문의 경비를 맡은 문도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던 검존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리 사가로 나간 태상장로라 할지라도 매화검존 이름값이 곧 화산의 명성이라, 입문식을 할 때 저를 부르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늘 하던 일들 중 장문인의 뒤를 따라다니는 일 뿐이 빠졌는데, 남은 생이 통채로 비었다. 영 도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뱀굴에 쳐들어 가 어르고 달래 사람 꼴 만드는데 꼬박 일 년, 새 장문인의 권위를 세워주고자 잠깐씩 화산에 들리고는 하는 방문이 석 달에 한번이라. 

 

 번을 서던 삼대제자는 입을 쩍 벌렸다. 분명 매화의 문양이 그려진 도복은 장로의 것이었으나 보지 못한 얼굴이었고, 알지 못하는 얼굴이라기에는 자신의 사형제와 제법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나. 그 옆구리를 차지하듯 붙은 당가의 장포를 걸친 이 하며, 맹세컨데 당가와 화산의 교류가 오가는 도중 저와 같은 당가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부할 수 있다. 무지렁이의 눈에도 값어치가 높음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는 사천촉금에 비단실로 새겨진 모란이란, 의복보다는 공예품에 가까웠다. 

 

 제자가 그들을 살피며 눈동자가 흔들리든 말든, 그들은 산문을 넘었다. 아, 오랜만이네. 건물이 좀 바꼈나? 당가에서 만든 한철검을 찬 검존이 기지개를 피며 중얼거렸고, 독이 들지 않은 연초를 꺼낸 당보가 장죽을 꺼내물었다. 이쯤 되면 번을 서던 제자가 먼저 달려가 장문인께 알리고도 남았을텐데, 어찌 산문의 제자는 여전히 쩡하니 얼어붙어 있고.

 

- 뭐냐?

 

 타인의 귀로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듯 익숙한 목소리와, 시간에 밀려 잊었다 생각했으나 여전히 콱 박히는 목소리. 단체수련 중 청명이 우뚝 굳은 틈을 타, 천우맹도들이 무기를 내질렀으나 곧 당군악의 비도에 튕겨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청명은 산문으로 내달렸다. 커다란 인영 둘이서 화산의 산문을 꽉 채우던 모습, 아마도 장문사형과 청진이가 늘상 보고 질려하던 그 모습. 기이하다면 둘 다 머리카락의 절반이 약간 넘도록이 백색으로 뒤덮였단 점이었고, 십만대산에 떨어져 있어야 할 팔이 멀쩡히 붙어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십만대산에는 저 몸뚱이 자체가 파묻혀 썩어있어야겠지만. 

 

 암향매화검을 어깨에 걸친 청명이 산문을 바라보았다. 시시덕거리던 쌍존의 눈동자가 똑같이 움직였다. 검존의 눈은 커졌고, 암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우리는 무얼 해야하지?

- 뭐?

- 이리 된 이유가 있을 것 아냐. 원인이 이쪽에도 저쪽에도 없다면, 무언가 작용했다는 뜻이겠지. 

 

 제가 기억하는 과거의 저라면, 화산의 기강이 뒤집히고 사파까지 끌어모아 훈련시키는 아둔함에 팔짝 뛸 줄 알았는데. 화산이 살아남고, 주변이 살아남았다면 과연 저도 이러했을까 싶을 정도로 검존은 차분했다. 정체를 밝히고 간단한 상황 설명과 함께 자기소개를 하자 넘어가려는 현종을 붙잡고 화산에 빈 객청을 하나 얻었다. 개인 수련 시간에 객청으로 쳐들어 간 기세가 무색하게도, 무릎에 당보의 머리를 뉘인채 머리칼을 쓸고 있던 검존은 가만 제 입술에 손가락 하날 얹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이어진다는 말이. 

 

- 전쟁이 끝났지만 완전히 떨어졌다 붙은 내 팔은 온전치가 않다. 십만대산에 올라 홀로 결사대를 수습한 당보는 다 낫고도 하루의 절반을 잠으로 보내지. 사형은 가끔 흉곽에 통증이 도지신다. 청진이 녀석은 문 한 쪽을 반드시 열어두고 다니는 강박이 생겼고. 남궁과 당가가 움직여 본산의 습격은 처리되었다. 그렇다고 죽은 이가 없는 건 아니고, 다시 복구할 만큼은 남아있다는 소리야. 

 

 청명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겪지 못한 시간선의 이야기. 청명은 검존의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만약 제 이야기라면, 어째서 저는 그렇지 못했는가. 어째서 숨을 놓지 않으려는 당보의 손을 쥐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고, 어째서 결사대의 시체를 밟고 천마의 목을 베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나. 세월의 흔적이 묻은 젊은 손이 암존의 귀를 가렸다. 

 

- 나는 당가에서 살고 있다. 가끔 화산에 들리지만, 이 녀석이 당가에서 나오려 하지 않거든. 아마 당가가 두 번 습격당한 일 때문이겠지. 너도 당보가 얼마나 당가를 아끼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그래도 현재 가주가 훌륭히 자라 이립을 넘기자 이리 나와 종종 화산에 잠깐 방문하는 정도는 해. 그렇다고 심마에 아예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립을 넘긴 젊은 무존의 낯은 도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생을 몇 번이고 더 살아도 깨닫지 못하리라 짐작했던 사형의 얼굴처럼. 청명은 저 얼굴에도 심마가 가라앉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살아남았다 해서 어찌하여 밟히지 않겠는가. 내가 생을 이어나가는 동안, 스러졌던 수 많은 귀애했던 존재들의 얼마 남지 않은 흔적을. 

 

- 낡아 바스라지기 직전인 노인네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면 까닭이 있지 않겠나. 사술은 아님이 분명하고, 원시천존의 인도라면 필히 네가. 지금의 강호가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셈이겠지. 

 

 그리하여 너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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