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

1700화 대 스포일러 + 날조

류우련 2024. 7. 5. 16:23

https://youtu.be/oLVgwsevkco?si=-8aqMF-8WWT4wf8Y

 

 

 

1. 

 

- 비키거라.

- 가주께서 화산의 결정에 당가는 개입치 않으신다고...

- 당가가 아니라 나의 일이다. 책임은 내가 진다. 

 

 백천은 당패의 뒤를 묵묵하게 따랐다.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오검이. 화산이 성장할 적엔 그들도 마찬가지로 성장하고 있었을테다. 오검만큼 강하다 말할 수 없을지라도. 강함이 어디 그리 절대적인 호칭이던가. 적어도, 백천은 당패와 같은 종류의 '강함'은 가지지 못했다. 비록 그와 비무를 겨뤄 10전 중 5승을 먼저 따낼 수 있을지라도. 

 

 부러 위장을 해 서고같이 보이지 않는 서고의 문을 열자, 내부서 자료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던 당잔이 허리를 피고 고개를 들었다. 백천을 향했다 제 혈육을 향하는 시선에는 별다른 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리 보이게 위장한 것인가. 침의와도 같은, 평소의 장포가 아닌 얇은 천자락은 무장조차 않은 것인지 책장 몇 장 넘기는 손짓에 함께 팔락였다.

 

- 이번에야말로 가주께서 기사멸조의 죄를 들어 단근참맥하려 하실텐데요.

- 내 결정이다. 

 

 당잔이 크게 한숨을 뱉었다. 백천이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동안 형제는 들리지 않을만큼 작은 소리로 몇 마디를 나누었고, 다시금 당잔이 한숨을 내쉼으로써 대화는 막을 내렸다. 당잔의 머리에 자리한 금박을 입힌 비녀가 흔들리는 호롱불에 의해 짙은 붉음을 비춰내었다. 거뭇한 손끝이 책더미 사이를 훑더니 얇은 서책 한권을 꺼내어 당패에게 건넸고, 당패는 표시된 페이지를 펴 백천에게 들이밀었다. 

 

 

2. 

 

- 기록에 따르면, 정마대전 중 암존께서 매화검존의 부상을 신의神醫에 가깝게 치료하셨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진료법은 당가에 남겨져 있으나, 당시 당문의 의술로 실현이 불가능한 경우 축약되어 기록되었죠. 그 중에는 단전의 수복 및 치료법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칼에 꿰뚫린 매화검존의 단전을 무사히 수복해낸 당가의 의술. 이 경우에는 암존의 독문의술이라 해야하겠지만. 당패가 건넨 지도에 표시된 별채로 가는 말의 고삐를 움켜쥐며 백천은 생각했다. 이를 알려주는 이유는, 저희도 파악하지 못했던 선조들의 발걸음을 일러주는 이유는. 

 

- 대가 없는 호의란 주어지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까.

- 장문대리는, 청명 도장이 어찌하여 당가에 방문했는지 아시오?

 

 천하비무대회가 시작하기 전 당가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당문 또한 구파일방과 같은 처지가 되었음이라. 당패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백천은 입을 다물었다. 화산의 문도들은 매화검수의 이름으로 청명의 과거가 무엇이든 덮고자 하였으나 모든 이들은 아닐테니까, 또한. 그들조차 모르지 않는가. 흑색의 무복 가슴에 새겨진 매화의 수를 제외하곤 녹색을 온 몸에 감고 다니는 사질의 행동의 연유 따위를. 

 

- 당시의 의약당주가 남긴 축약만으로는 장문대리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찾아오십시오. 

 

 제대로 된 서적을. 백천은 손에 쥔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지도라기엔 지나치게 방대한 문자와 기이한 수식들. 수십의 진으로 보호받고 있는 암존의 별채는, 생전 암존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기록한 후 그 열쇠를 당가주에게 맡긴 산물이었다. 다만 의미심장하게 당잔이 말을 얹은 것이, 대가 지날수록 발견되는 서적의 수가 많으니 혹시. 하고. 

 

 

3. 

 

- 그리하여 장문대리께서 살아남으시면, 총사께선 종남의 무복을 입은 장문대리를 보고 기뻐하실겝니까? 그의 의지를 꺾어서라도 얄량한 목숨을 이어붙인 것에요?

- 당잔. 

- 의기가 무엇입니까, 혼이 또 무엇입니까. 죽어가는 이들은 죽음을 피하길 원할지언정 산 자들이 자신의 저승길에 동행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상처입은 짐승조차 제 주인에게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숨어들어요. 굴을 파고 들어가는 산송장을 집어다 억지로 살려내곤 저잣거리에 던져두는 일이 진정으로 총사께서, 장문인께서, 화산에서 하고 싶은 일이십니까?

 

 바락바락 대드는 목소리가 악에 받쳤다. 당가에서도, 화산에서도. 하다 못해 그의 혈육들마저 당잔이 저리 무도하게 구는 이유를 몰랐다, 당패를 제외하고는. 화산이 화산의 장문대리에 대해 결정한 일을 구태여 당가에 알릴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동의를 받을 필요도. 화산의 장문 곁에서 자식을 바라보는 당군악의 시선이 차가웠다. 시뻘겋게 핏줄 선 자식의 눈동자가 아비를 노려보았다. 

 

- "중원을 위해 나선 이를 아무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중원을 구하겠습니까?" 

- 당잔!

- 가주님께서 하시렵니까? 마교가 침입한 화산의 가장 지척에 있었으나 화산을 외면하고 전각에 불을 질러 화산의 매화검법을 탈취하고 제 검법인 양 천하를 기만한 저 종남과 함께요?

 

 전쟁 중에 가주가 된, 이립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가주가 출전을 반대하는 원로원을 두고 차갑게 대꾸한 말이었다. 원로원의 반대 끝에 가주와, 장로들은 전원 천마를 잃고 섬서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 항전했고 모두가 전사했다. 지학의 나이에 가주가 된 아들은 원로원과의 줄다리기에 평생을 쏟아부었다. 전쟁 후의 당가타는 그리 세워졌다. 그의 일지에는 남아있었다. 모두를 원망한다, 마교를 원망하고 암존을 원망한다. 외면치 못한 아비를 원망하고 남아주지 않은 숙부들을 원망한다. 허나,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자신 또한 기꺼이 비도를 들었으리라고. 그리 부끄럽게 살 수는 없다고. 그러니 저는. 

 

- 너는 지척에 선 자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혼자 살아남는 게 무엇인지 몰라. 

- 아니요, 저는 압니다. 

 

 당잔의 핏줄 터진 시뻘건 눈에서 청명은 당보를 본다. 명도가 죽고, 그 시신조차 수습못한 충격에도 멍하니 있다 무림맹의 명령에 따라 출전하고자 검을 쥐었을 때 제 멱살을 붙들고 강가로 내던졌던 당보를. 그 녀석도 그리 바락바락 화를 냈다, 얼굴 몇 번 보지 않은 지천명의 도사에게 간식 몇 번 쥐여준 게 다면서. 

 

- 그렇게 멍청하게 굴지말고 화산으로 가! 아님 도로 돌아가서 시신이라도 수습해오던가! 에라, 등신같은 말코새끼야! 백정백정 하니 왜, 본인이 정말 날붙이로 도륙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망나니 새낀 줄 아쇼?

- ... 

- 화산의 제자가 댁에게 무슨 의미인지 내가 아는데! 저 무림맹 새끼들 하는 말이 무어라고 그걸 다 들어주고 앉다가 뭐 쫓는 개마냥 이리 손짓하면 가고 저리 손짓하면 가냐고! 내가, 당신에게. 화산이... 

 

 그리 무너져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며, 검존은 차가운 물에 젖은 채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저 두 손에, 사천의 촉금으로 된 장포에 묻은 피가 화산의 제자를 얼마라도 더 살리고자 고군분투한 흔적이라는 것을 아는데. 네게 사과를 해야할지, 위로를 해야할지. 모든 감정이 엉망진창 뒤섞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청명은 그 날 당보의 울음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널 닮은 후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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